(회개)공포보다 회개고통 더 컸다

공포보다 회개고통 더 컸다
"가족과 조국를 위해 기도했습니다.또 비상사태 발생시 이 불쌍한 영혼을
하나님께서 거두어주시길 기도했습니다"
페루 좌익게릴라들에 의해 억류됐다 풀려나 일시 귀국한 이원영 주(주)페
루대사는 8일 김영삼대통령과의 면담에 앞서 가진 본지와의 특별인터뷰에서
신앙의 힘으로 당시 최악의 사태을 극복한 상항을 생생히 간증했다.
포탄이 터지고 2시간의 총격전이 벌어진 뒤 게릴라들에 의해 억류된 이대
사는 그들의 요구조건이 엄청나 협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죽음을 각오했다.
이대사가 3일동안 밤을 꼬박 지샌 곳은 5평 남짓한 일본대사 침실.인질 가운데 40여명이 그곳에 갇혀있었다.
그는 죽음을 옥죄여오는 이 숨막히는 공간에서 자신과 인질동료들의 안전,
게릴라들의 회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결국 하나님은 이 애절한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는 억류 4일째 게릴라와 페
루정부와의 협상메신저로 몸서리치는 악몽을 뒤로하고 자유의 몸이 됐다.
그는 먼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크리스천은 어느때 하나님앞에 불려 가더라도 구원에 전혀 문제가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
장 16절에서 18절 말씀을 암송했지요.그리고 언제나 주님만 바라봅니다라는
찬송가 465장을 마음속으로 힘차게 불렀죠"
한편 이대사는 긴장의 순간마다 시편1편과 23편등을 계속 묵상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평소에 게을리 했던 것입니다.여기서 죽으면 하나님이 죄많은 저를 받아주실지, 솔직히 자유를 얻는 것보다 죽음뒤가 두려웠습니다"
이대사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참된신앙을 회복한 것이다.겉으로는 매우 침착하고 담대한 외교관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억류 3일동안 게릴라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공포감 이상으로 회개의 고통을 체험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잘못한 것을 모두 회개했습니다. 회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몸을 자유하롭게 하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
꼈습니다"
이대사는 특히 이번 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체험했다. 인질로 잡힌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를 페루정부측과의 협상사절로 게릴라들이 풀어준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환란중에 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동안의 죄를 묻지 않으
시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난 일본대사관저를 나오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크리스천으로 살기로 맹세했습니다"
이대사는 또한 이번 일로 자신이 이웃에 베푼 것보다 이웃이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석방된뒤 부인으로부터 들어 알았지만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이상으로 걱정하며 기도했다는 사실이다.
"미천한 나의 석방을 위해 철야기도를 한 사람들이 한두사람이 아니었습니 다. 특히 외무부신우회의 합심기도는 대단했습니다. 나를 아는 한국의 성도들도 아마 그러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이대사는 이와함께 부인의 신앙심 앞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모태신앙을 가
진 이대사의 부인 조성실씨는 남편이 석방된 뒤에도 나머지 억류인사들을 위해 3일간 금식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이대사는 43년 경북 성주에서 완고한 유교가정인 이우석(81) 김태달(82)씨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한뒤 69년 외무고시에 합격 했으며 67년부터 30년째 외무부에서 근무해오고 있다.
이대사는 30대 초반에 세례를 받은 신앙인이지만 부인과 함께 부모를 모두
전도했으며 94년5월까지 1년동안 외무부 신우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신앙심이 두텁다.
현재 페루한인연합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김삼환목
사)에 적을 두고 집사직분을 맡고 있다. 슬하에 2남을 두고 있으며 18일쯤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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