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헌 신

 헌 신
에덴 동산의 실과는 사람 보기에 먹음직 하고 보암직 하고 탐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가 좋아 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것 중에도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겉 보기에 추해 보이고 싫어 보이는 일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숨겨져 있는 일이 있다. 우리가 보이는 것에 치우치면 멸망으로 인도 하는 문으로 들어 가기가 쉽다.
먹음직하게 보인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탐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먹으라고 하면 먹기 싫어도 먹어야하고, 하나님 말씀이 먹지 말라고 하면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나의 행동의 결정권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령에 충만하려면 육신의 욕심을 결정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육신을 못 박는 것은 십자가 뿐이다. 십자가는 바로 육체적인 가능성의 포기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육체를 정죄하고 우리의 육체를 고칠 수 있다. 우리가 우리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무화과 나무잎으로 치마를 해 입은 것과 같다. 하나님이 입히신 가죽옷만이 우리의 허물을 가릴 수 있다.
뱀에게 아무리 살찐 영양을 공급해도 양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살찐 뱀이 될 뿐이다. 훌륭한 설교를 듣는다고 훌륭한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가롯 유다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도의 기본 사상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에서 출발하고 불신자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에서 출발 한다. 씨를 뿌림은 씨를 그대로 거둠이 목적이 아니고, 씨가 썩어져 열매를 거둠이 목적이다. 주님이 말씀을 주신 목적도 우리의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삶을 통해서 열매를 얻기 위함이다.
번제는 제물을 다 태워 버린다. 남은 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 뿐이다. 인간에게 돌아오는 몫은 하나도 없다. 이것이 십자가의 정신이다. 성도의 삶은 번제를 드리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내게 돌아올 몫을 배재 할수록 아름답고 우리에게 돌아올 몫을 의식하지 않을수록 바른 헌신이다.
지식이나 경험이 영의 지배를 받아야 생이 바뀌어진다.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증명할 수 없듯이 영적인 것은 지식이나 경험적인 것으로 증명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영이 자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은 인생이 자식을 하나님께 바친 곳이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인생에게 주신 곳이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타작 마당이었다. 제단은 하나님이 인생을 사랑하는 자리요 인생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제단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가려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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