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한국농촌에 심은
한국농촌에 심은 `인술 30년'
## 올 한미우호상 수상..."전주는 내고향" 한국이름 설대위 ##.
{제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미국에 돌아간 뒤에도
1년에 한두번씩 한국을 찾지만 그때마다 고향에 온 것같은 푸근함
을 느껴요.}.
미국 이름 데이비드 실(David Seel)보다 우리 이름 설대위를 더
사랑하는 벽안의 [한국인]. 한국전쟁 직후인 54년 의료 선교사로
아내 설매이(70)씨와 함께 들어와 가난과 전화로 무너진 농촌에서
36년간 인술을 폈던 그다. 90년 정년퇴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72
세의 설박사는 아직도 [전주 예수병원 명예원장]의 직함을 갖고 있
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직접 피고름을 짜가며 만난 환자들을 하나
하나 기억했다.
{6.25때 인민군 죽창에 어깨를 깊이 찔렸다가 치료를 게을리해
종양으로 팔을 자를 뻔한 농부였죠. 6시간 긴 수술끝에 힘겹게나마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제 손을 꼭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
하더군요. 퇴원한 뒤에는 찐 감자를 한아름 안고 왔던 기억이 새롭
습니다.}.
지난 90년 전주예수병원 원장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돌아간 후
에도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의 재향군인병원에서 여전히 의료봉
사 활동을 하고 있다. 설박사는 {아직도 전주예수병원에는 내가 일
하는 줄알고 먼 곳에서 환자들이 찾아간다고 하더라}며 즐거워 했
다. 며칠전 전주에 들렀을 때는 40년전 깜박깜박 하는 전등아래서
밤을 새운 수술끝에 살려냈던 환자를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저에게 훌륭한 이름을 붙여줬고 전주비빔밥과 순두부찌개 맛을
가르쳐준 한국은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7년전 미국으로 돌아가면
서 비빔밥을 먹기 힘들게 됐다며 아내가 얼마나 서운해 했는지 모
릅니다.}.
그가 54년 병원에 처음 왔을 때 데이비드라는 이름과 발음이 비
슷하다며 동료 의사들이 붙여준 것이 대위라는 이름이다. 이름에
손색없게 설박사는 한국에서의 36년동안 단순한 신앙적 봉사를 넘
어 우리나라 암연구수준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50~60년대 농촌에는 왜 그렇게 암환자들이 많았는지 몰라요.
무당을 찾아가고 시골 떠도는 돌팔이를 만나고 이런저런 민간요법
으로 몸을 다 망친 환자들이 뒤늦게 찾아왔을 땐 너무나 안타까웠
죠.}.
이런 참상을 지켜본 설박사는 [대한 두경부종양학회]를 처음으
로 설립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암환자 등록사업을 시작하는 열성을
보였다.
이토록 희생적인 한국에서의 봉사에 대해 한미우호협회(회장 김
상철)는 올해 [한미우호상] 수상자로 설박사를 선정했다. 이 자리
에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부친에 이어 자신과 아들까지 3대째 한국
에서 근무한 리처드티몬스 미8군사령관도 함께 상을 받는다. 94년
10월부터 미국에서도 한국관련 뉴스는 빠지지 않고 챙겨본다는 설
박사는 {`물질적 풍요로 인해 지나간 시절의 고통을 잊어버린 한국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진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