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장애아들의 어머니의 죽음
장애아들의 어머니의 죽음
"하나님이 내게 보내 주신 버려진 이 아이들과 영원히 같이 살기로 했어요"
39년 동안, 병들어 버려진 아이들 속에서 대리 엄마로 살아온 김정순보모 (59. 시립아동병원 근무)가 지난달 29일 오전 6시50분쯤 출근길에 근무처인 아동병원앞 횡단보도에서 뺑소리 승용차에 치여 홀연히 장애아들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매일 출근과 함께 25몇의 소아정신과 환자들을 목욕시키면서 "사타구니를 깨끗이 씻어줘야 냄새가 안난다"고 후배 보모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을 기억하는 병동 사람들은 어이없는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욕창이 걸리지 않도록 아이들을 안아 자세를 바꾸어주다 보면 찾아오는 어깨결림 등 육체적 고통으로 보모들이 3년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바꾸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김씨는 한사코 아동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질 때까지 밥을 먹였고 운동시간에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병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 끝까지 웃음으로 대하며 보모의 자리를 지켜왔다.
병동 사람들은 그녀가 경련이나 발작이 찾아오기 전의 환자를 누구보다 먼저 발견해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57년 서울시 임시직원으로 채용돼 63년에 아동병원의 전신인 시립영아원에서 보모가 된뒤 이듬해 정식 행정직 공무원이 됐으나 병동 근무를 자원해 지금까지 행정직이면서도 병든 아이들의 병상을 지켰다.
행정직의 경우 밤 근무가 없는 데도 밤 근무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장애아들에게 정성을 기울였다. 병동의 어린이들은 부모가 치료를 포기해 버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장애아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발작을 일으키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해온 셈이다.
이 병원 최등자간호과장(53)은 "영아원 당시 해외입양 간 아이가 처녀가 돼 찾아오고, 질병이 호전돼 재활원 등으로 떠난 아이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이들을 껴안아주곤 했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31일 시어미니(90)와 남편 김홍식(63), 대학을 졸업한 두 아들 등 가족이 다니는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에서 교회장으로 영결식을 갖고 화장됐다. 그녀는 평소 집사 직분과 구역장을 맡는 등 신앙심도 깊었다. 서울시는 1일 무연고 장앵환자 관리업무를 헌신적으로 펼쳐온 김씨의 공로를 인정, 지방 행정주사보(7급)에서 행정6급으로 1계급을 추서하고 표창장과 위로금 5백만원을 유족에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