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음성 꽃동네서

음성 꽃동네서 "봉사 새삶"
[삼풍 두돌] 유족 이원걸씨,

## 사고후 술로 지새며 입원까지...보상금 나눠준 후 혼자 떠나 ##
## "아내-아들 떠난 자리에 불우노인들 맞았어요" ##.

{아내와 아들을 먼저 보낸 대신 이젠 노인들이 제 가족이 됐습니
다. 그분들은 제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 노인들의 수발을 들고 있는
이원걸(42)씨.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졸지에 부인과 외아들을 잃고 꽃
동네 노인들의 수발을 들고 있는 그는 아직 그늘이 가시지 않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가족을 잃고 알콜중독자로 전락했던 지난해
봄까지의 고통스런 기억이 가끔 마음 한구석에 아리게 떠오르지만 그때
마다 노인들의 등을 밀고 머리를 감기며 잊으려고 한다고 했다.
{오후 6시쯤인가, 처형이 가게로 전화를 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
다]고 하더군요. 앞이 캄캄했습니다. 청심환을 한 알 먹고 현장으로 달
려갔지요.} 그날 아내 김명순(당시 37세)씨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
러 아들 승진(당시 12세)이를 데리고 백화점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부동산 중개인인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늘 적자였기 때문이다.
7월초의 폭염과 우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사고현장을
정신없이 뒤졌다. 이씨가 가족의 죽음을 확인한 것은 그로부터 18일 뒤
였다. 산산조각난 시신들.. 시신을 화장한 뒤 화장터 뒷산에 뿌리고
돌아섰다. 그날 이후 {술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먼지덮인 텅 빈
방에서 아내와 아들의 활짝 웃는 영정을 보며 매일을 술로 지샜다.
보다못한 아버지는 경기도 오산의 한 신경외과에 아들을 입원시켰다.
이씨가 알콜중독 치료를 마치고 나온 것이 지난해 6월. 보상금으로 받
은 6억원중 5억원을 본가와 처가 식구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1억원은
은행의 신탁 상품에 넣어 최소한의 생활비로 삼은 뒤 첫달치 이자 76만
원을 들고 꽃동네를 찾았다. 이씨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어울
리다 보면 내 고통도 사그라들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꽃동네 인근 마을에 월세 10만원짜리 사글세방을 구한 뒤, 거동이
불편한 무연고 노인과 임종을 앞둔 노인환자 4백명이 수용돼 있는 [구
원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노인들의 식사와 목욕을 돕고 똥-
오줌을 받아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중노동에 가까운 봉사활동이
몸에 배면서 마음의평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노인들이 삶은 계란을 하나씩 받아들고 그
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노인네의 때묻지 않은 미소에서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28일 2주기를 맞아 삼풍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이씨는 {노인들 덕분
에 다잊었다고 생각했는데.}라며 아내와 아들의 위패에 성모마리아상
을 선물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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