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부실사회 위로하는 자원봉사자

부실사회 위로하는 자원봉사자

참극의 와중에서 아름다운 사연들이 전해지고 있다. 매몰현장으로 뛰어들어가 생명을 걸고 구조작업을 벌이는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벼랑끝 같은 절망속의 우리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생길 것 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뛰어든 이들은 수모까지 받아가며 그 일을 하고 있다. 값비싼 물건들이 널려있는 참사현장에서 `견물생심'을 이기지 못한 좀도둑들 때문에 오해를 받고 주머니 뒤짐까지 당해야 한다. 이런 일은 초기 단계에서 현장장악에 실패한 당국이 단체나 기업 등 조직을 통하지 않은 개인적 차원의 자원봉사자들을 도매금으로 의심하게 되면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생존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구조대에 시급한 출동을 요청하거나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지점을 제시해도 늑장을 부리거나 묵살당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충분히 구할 수 있던 생존자들이 당국의 무성의와 늑장대처로 상당수 숨졌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이들의 동기도 사뭇 눈길을 끈다.
현장 취재기자들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3분의 1정도는 사고 초기 구조대원들이 모자라자 선뜻 나선 실종자 가족이다. 공조직의 구조대가 투입된 뒤에도 자신들의 손으로 핏줄을 구하거나 하다못해 주검이라도 직접 거두고 싶어 자원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한 자원봉사자는 여동생이 일하던 지상 1층 중앙통로 근처의 화장품 코너를 집중적으로 수색하고 싶지만 동료들에게 미안해 배당받은 곳을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손은 엉뚱하다 싶은 곳의 콘크리트를 긁어내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중앙통로 쪽에 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 중의 한 사람을 교통사고 등으로 잃은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의
간단한 응급조치 만이라도 있었다면 목숨을 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그런 사람이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개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억울하게 죽어갈 생명에 대해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한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는 종교적 신념이나 남과 다른 독특한 철학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에 위험이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처럼 현장으로 뛰어나온 사람들이다. 하루만 자원봉사를 하려고 나왔는데 도저히 발길이 안떨어져 못간다는 사람들이다. "피투성이인 채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을 구해본 사람이면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막노동꾼, 용접공, 휴가중인 군인, 외판원 등이 대부분인 이들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기 일쑤라고 한다. 귀찮아 죽겠다는 듯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싸늘한(?) 대답을 남기고 피해 버린다. 의협심 이외에 다른 이유나 목적이 없는 것이다. 혹 인터뷰에 응하더라도 생명찾기에 대한 열정만 곳곳에 묻어날 뿐 품위있는 어휘로 자신을 포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에 그치지 않는다. 집안일도 젖혀둔 채 구조대원들을 위해 밤새도록 김밥을 마는 주부들, 약국 문을 닫고 대책본부 안에 무료약국을 개업한 약사들, 휴가를 내고 막장으로 달려온 군의관, 쌀 한가마분의 밥을 지어 현장으로 날라온 포장마차 주인, 각종 장비와 소모품.음식 등을 제공하는 기업들, 장사를 포기하고 가게를 아예 또다른 구조본부로 내놓은 주변 상인들.
고급취미나 즐기는 것같던 아마추어 무선 햄들의 활약은 어떠했던가. 소방대가 무전기 출력을 높이기 전인 사고발생 초기, 모든 통신수단이 끊긴 지하3~4층에서 물.산소.공구 등 비상물품 공급을 긴급요청할 수 있는 방법은 이들이 지닌 무선장비가 유일한 것이었다.
이들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은 `부실공화국' `비리공무원 천국' 등의 자기비하와 집단우울증에 빠진 우리 사회를 위로하고 있다. 외국언론의 비웃음이나 사고 있는 이 나라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각박한 세태만 한탄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이들은 더러운 자본주의의 탐욕이 저지른 악을 정화하고 대속해주고 있다. 많은 선의의 사람들에게 그래도 이땅이 `사람이 사는 곳'임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대규모 `살인행위'에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는 넋들과 그 가족이
이들의 노고에 작지만 큰 위로를 받게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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