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올해 스물일곱 살인 찬우 씨는 늦깎이 대학 초년생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돈을 벌었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과 군대 때문에 좀 늦긴 했지만 틈틈이 입시 학원을 다니며 공부해서 올해 당당히 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일류 대학은 아니지만 자신의 성적에 만족해하며 한 학기를 넘긴 어느 날이었다. 그에게는 평소 잘 따르는 몇몇 나이 어린 동기생들이 있었다. 지난 학기만 해도 그들은 함께 어울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그가 자리를 비우는 날이 늘어났다. 이를 이상히 여긴 동기생들은 분명 그에게 애인이 생긴 거라고 단정지었다.
"형, 우리한테도 좀 소개 시켜주라. 그 공주님이 누군지 궁금해 죽겠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무슨 얘긴지 알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다음 주 화요일은 어때?" 모두들 좋아라 박수를 쳤다.
드디어 기다리던 화요일이 되었다. "버스 타고 한참 가야 돼" 하는 그의 말에 '뭐 그렇게 비싸게 구나' 싶어 모두들 입을 비죽거렸다. 그렇게 40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천사원이란 푯말이 붙은 공공 기관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있는 지체 장애인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왔던 것이다. 하던 아르바이트까지 그만두고 시작한 것이 아무 대가도 없는 야학 선생이란 걸 안 그들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공부를 가르치고 돌아오면서 그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막상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너무 힘에 부치는 거야. 그래서 결심했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아르바이트는 돈만 돌려주면 그만이지만 처음 야학에 나가서 받은 가슴 뿌듯함은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