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농촌봉사활동의 허와 실
농촌봉사활동의 허와 실
한때 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은 여름 방학을 맞아 농민을 의식화시키는 민주화 투쟁의 일환으로 정부의 탄압을 받았던 때가 있다. 어떤 농촌에서는 제대로 일손도 못도와주고 쫓겨나는가 하면 어떤 곳은 민주화의 기지로 마을을 변화시키는 승리의 활동도 있었다. 비록 정부의 탄압이 집요하였지만 그만큼 학생들의 농활은 위력도 켰고 학생운동의 열정도 뜨거웠다. 그리고 농활은 정부를 반농업적 정권으로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농민운동을 지원하는 학생운동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1978년경 아카데미 농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의 사회구조적 모순을 깨달은 젊은 기독교 농민운동 활동가들은 농촌이 가난한 것은 농민의 잘못이 10%라면 90%는 우리나라의 반민주적 사회구조에서 나온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벌써 기독학생운동 출신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특별히 이들과 기독학생들은 민주화운동에 상호 공감대와 연대를 형성하며 기독학생들의 농활을 주도해왔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기독교농민회가 생기고 전국적 농민운동 단체들이 생겨나며 민주화의 길에 매진하는 열정이 1987년 6.10민주화대투쟁을 기점으로 농민운동 과정에도 형성되면서 학생들의 농활도 아마 폭발적으로 이루어졌고 이 시기가 되면 정부와 학생들이 농촌현장에서 재격돌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민시대가 되었다고 하는 지금, 농민운동도 새로운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 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도 예전에 비하면 참여가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가기를 두려워하는 회피지역처럼 여기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요즈음 농촌에 가면 여기 저기 빈 농가를 볼 수 있고 젊은 농촌 청년들을 보기는 하늘에 벌따기 보다 힘들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일손을 도우려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왜 학생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농촌으로 변하였는지 궁금하다. 이것은 반농업적이요 반농민적인 소위 신농정으로 부터 오는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농촌을 살리는 대안적 운동에 대한 학생들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가 약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학생들의 고민은 21세기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의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의 비전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여전히 명확하게 그들의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대학 기독학생회는 이런 고민 끝에 농활 대신 「전국순례」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면서 여기저기 새로운 운동을 모색하는 지역을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지금 대학생들은 운동이나 봉사에 앞서서 자신의 진로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봉사를 가서 농민들의 희망없는 한맺힘과 고달픈 노동의 현실을 바라볼때 자기 자신에게도 아직 대책이 없는 젊은 기독대학생이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보고 외면하려는 도피의식 마져 생길 수 있다.
그리하여 어떤 기독학생회는 이제 거창한 농촌봉사 또는 농촌선교 활동이라는 이름보다는 농민들과 함께 어려움을 함께 느끼고 함께 고민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선 배움의 현장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농촌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기독학생들이 그들의 활동방향을 「여름생명학교」라고 붙여놓고도 『웬 「여름생명학교」?』라고 부제를 걸고 이 어색한 이름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 기독학생회의 전문성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생명의 삶을 살아가신 그길을 따르는 운동과 실천으로서 환경오염의 현장을 돌아보고 새로운 생명의 삶을 실천하는 공동체나 시민운동들로 부터 먼저 배우고 그 다음 돕는 활동을 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제 농촌봉사활동은 민주화 투쟁의 일환이 아니라 학생들의 꿈과 비전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모색하는 「열린 현장교육체험활동」이며 그 가운데 농민과 함께 하는 봉사정신,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사랑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모토로 새로운 미래를 위한 대안 모색을 위해 여름봉사활동이 기독학생들 가운데 꿈틀거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교회가 이런 기독학생들에게 애정과 사랑을 아끼지 말고 물질적인 도움과 정신적 지지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함께 변화를 모색하며 21세기의 예수 사랑의 실천운동이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