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조지휫필드의 헌금
조지휫필드의 헌금
18세기 중엽에 일어났던 미국의 제1차 대각성운동은 근대 부흥운동의 효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제1차 대각성운동의 주역은 조지 휫필드였다. 물론 휫필드 외에도 부흥운동을 신학화한 조나단 에드워즈나 장로교 내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킨 윌리암 테넨트 같은 인물이 있었지만, 웅변적인 부흥사로서 청중을 사로잡는 데에는 휫필드와 필적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휫필드는 미국이 아직 `나라'로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을 때 미국의 남부에서 북부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일한 인물이었다. 휫필드의 부흥집회가 얼마나 은혜로웠던지 집회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여기에 관한 일화가 있다.
조지 휫필드의 부흥집회 가운데에는 종종, 사람들을 회심시켜 진정한 신자들을 만들려고 하는 목적과 더불어 그가 조지아주에 설립하려고 하는 고아원을 위하여 후원금을 모금하는 목적을 가진 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당시 그의 부흥집회에는 고아원을 위한 헌금을 호소하는 것으로 끝을 맺은 적이 많았다.
어느날 휫필드의 부흥집회에 미국독립운동의 아버지며, 철학자요, 정치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참석했다. 그의 부흥회가 너무 유명해서 참석하기는 했지만 프랭클린의 마음속에는 서너 개, 금화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휫필드가 이야기를 계속해감에 따라서 프랭클린의 마음은 누그러지기 시작했고, 결국 동전을 헌금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의 유창한 언변에 또 한 번 감동된 프랭클린은 동전만 내겠다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그래서 은화까지 내기로 했다. 설교 마지막쯤에는 그의 설교 마지막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프랭클린은 결국 주머니를 다 털어 남아 있는 금화까지 모두 헌금접시에 내고 말았다.
같은 날 부흥회에 참석한 프랭클린의 친구는 아예 모든 돈을 집에 두고 나왔다. 왜냐하면 휫필드의 설교에 감동된 나머지 순간적으로 헌금하지나 않을는지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마음은 움직여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헌금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옆에 있던 홉킨슨이라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는 그 집회에서 은혜를 받지 아니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보게, 나는 언제라도 부담없이 자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네. 왜냐하면 자네는 지금 올바른 판단력을 잃은 것같아 보이기 때문이야."
오늘날 교회의 각종집회에 모금순서가 등장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순서를 마지 못해 맞이한다. 프랭클린을 설득할 수 있는 정도의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모금을 하는 휫필드의 능력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