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세상의 특성
세상의 특성
참고 :이생의 자랑
요한일서 2:16에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니라]
사람들은 두차례나 걸친 세계대전과 참혹하게 죽어간 생명, 피비린내나는 대량학살과, 육욕,공포,비참하기 그지없는 모든 것들을 꿈에라도 생각하기 싫어한다. 그런데 그런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가?
성경은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개개인의 범죄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은 그 어느 누구가 아니라 바로 세상 그 자체이다. 그 모든 일의 원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 즉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의 마음가짐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특성을 아해하고 살아야 한다.
1. 세상은 육욕이 있다.
육욕이란 무엇인가? 육신의 정욕이다.
그것은 강한 욕구이다. 세상적인 삶의 특징에 대하여 성경이 다른 것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육욕이란 욕심에 이끌려 사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성적인 사람은 욕심에 이끌려 살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지성에 의해서 살아간다. 하지만 실제적인 문제에 접해,자신에게 정직하게 말해보라. 많은 지성들은 순수한 삶을 영위하고 있노라고 말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우리가 신문을 자주 들여다 보면 그것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지능이나 인테리의 정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모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자들이다.
정치 후보자가 단상에 올라와 나라를 사랑하고 봉사하는 정신으로 국민들의 머슴이되고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 운운하며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한다.
어떤 후보는 자신이야 말로 무공해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도 마찬가지로 조금도 덜하지 않는 욕심덩어리요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사람들이다.
욕망이란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는 강한 충동을 의미한다.
그 본능은 아주 강하게 인간에 주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사람일 때 그 본능들은 우리의 자제력을 능가한다.
분별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술과 마약에 빠져든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인테리들이 남의 가정 생활을 파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티없이 자라는 어린아이들을 무참히 죽이는 일들을,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가장 지상적이라고 하는 자들이 이런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다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서ᅩᆨ에서 불일듯 일어나는 욕망이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강력한 인간의 정욕과 욕심이 우리의 이성보다도 훨씬 강하게 나타나는데 세상에 있을 때 우리는 그 욕망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코 헤어날 수 없다. 그 이유는 ㅡ렇게 함이 잘못인지 알면서도 스스로가 강력한 욕망과 과격한 성향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즘 서울에는 어느 폭력물을 다룬 영화인파가 수일만에 50만이 남었다고 과고하는것을 보았다.
그 영화를 본 사람에게 모두 물어본다면 그중 어느누구도 말로는 폭력을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폭력을 혐오하고 증오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 말고 어떤 대리인이 자기 대신 남을 죽이고 남을 때려주기를 원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다.
요한은 이것을 육체의 정욕이라고 규정했다.
세상의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과는 전혀 다르게 육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세상은 성적욕구(性的慾求)로 가득하다.
오늘날의 세계는 성적으로 매우 문란해진 세대이다. 우리모두는 여기에서 도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는 성적 갈망은 매우 크게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의 사생활에 관한 기사나 글을 읽어 보면 성적인 묘사가 얼마나 짙게 표현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런 부류의 책들은 불티나게 팔린다. 이것이 육체의 정욕이며 세상 사람들의 삶이다.
1900년전에 요한일서를 쓴 요한은 마치 어제일을 목격하고 쓴 것처럼 우리가 처해 있는 현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세상의 삶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떠나사는 삶이다. 물론 우리는 20세기 말에 살고 있다. 1세기에 살았던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우리는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있는가?
우리가 그들이 했던 일을 똑같이 하고 그들이 생각했던 것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다른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은 과거의 조상들이 했던 일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정욕은 도둑질을 하게 하고 강도짓을 하게 하는 장본인이다. 남의 부인이나 남의 남편을 빼앗아 가는 것도 절도요 강도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러한 일들을 떠들썩하게 보도하지만 그러나 하나의 흥미거리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즐거운 오락으로 간주한다. 남의 유뷰녀를 농락하는 일들을 하나의 흥미로운 일들로 묘사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기사를 읽으며 은근히 부러워하고 즐기는 것이다.
3. 세상은 허례(虛禮)와 허식(虛飾)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바로 안목의 정욕이다.
외모나 와관 또는 허례허식들을 숭배하는 것이다. 양심과 상치(相馳)됨에도 겉치레에 열심인 것을 말한다.
주님은 어느날 바리세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앞에서 스스로 옳다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그것이니라](눅16:15)
세상은 바깥에 드러나는 외관을 상당히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안목의 정욕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세상이 눈에 보기에 좋은 것들에다 관심을 기울인다.
겉만 번지르하며 그럴 듯하게 보이고 실상은 남을 속이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한 특징이다.
세상은 우리를 현혹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보기 좋게 꾸며 놓는다. 본래의 세상의 색깔을 보지 못하도록 세상은 치장하고 염색한다. 무엇이 진짜인지 구별하지 못하도록,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속아 넘어가도록 거의 완벽하게 치장한다. 외모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바로 세상의 특징이다.
중고 자동차를 산 사람들이 거의가 한달이 못돼 가슴을 치며 속상해 하는 이유는 빨갛게 이미 녹이 슬어버린 곳에 살짝 페인트로 가린 것을 모르고 샀기 때문이다.
그런차를 사서 비 몇 번만 맞게하면 빨갛게 녹물이 표면위로 올라오거나 속에서 부식이 되어 툭툭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보기에 멋이 있는 한 속이야 어떻든 상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세상의 특성이다.
그러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가득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바로 이생의 자랑이다.
3. 세상은 바로 자기를 자랑하는 특성을 지닌다.
사람들은 자신을 인하여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를 원한다. 박수갈채를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 많이 갖기를 원한다.
신문에 이름이 실리기를 원한다. 과고판에도 자기 이름이 나붙기를 원하다. 어디에 가도 자기 이름이 올라가기를 원한다.
유명한 집회에 자신이 빠지면 살맛을 잃어버릴 정도다. 그러니 악착같이 쫓아다니며 자기 이름을 올려 놓는다. 남들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힘쓰고,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원한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기를 원한다.
모처럼 외출했다가 악어를 보고 겁에 질려 도망온 어린 개구리 앞에서 엄마 개구리가 배에 바람을 집어 넣으며 악어보다 자신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자식앞에서 애쓰다가 그만 배가 터져 죽었다는 우화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그것이 이생의 자랑이다.
이생의 자랑은 우리를 질투의 열차를 타게 한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많은 이생의 자랑거리를 가진 사람들을 질투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다.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나 우리의 실력을 과시하는 곳에 나보다 훨씬 능한 사람을 볼 때 질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세상에 속할 때 그러한 질투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더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만 보아도 배가 아파 괴로움을 느낀다.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이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삶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묵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세상의 두드러진 특징인데 그러한 특징 때문에 이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의 소문이 들려지고 있는 것이다.
뺏고 빼앗고,
이 세상이 총성으로 시끄러운 것은 어느 통치자 한사람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특성이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히틀러가 죽었다고 학살과 살륙이 없어졌는가?
이 세상의 도처에 히틀러가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세상의 특성인 것이다.
헛된 것을 추구하고 헛된 것을 자랑하는 것, 가치없는 것을 자랑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긋들이 다 부질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세상의 특성 때문에 세상은 자꾸 무시무시한 세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 대문에 세상이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의 특성 때문에 악해져 가는 것이다.
그러한 나쁜 특성이 가득한 세상과 짝하는 것은 선을 버리고 악을 택하는 것이요 함께 악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겠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 마틴 로이드 죤즈의 [십자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