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길수
한국인의 길수(吉數)
우리 고전소설(古典小說)을 보면 후에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릴 주인공의 생일생시를 댈 때 적지않이 `정월생남(正月生男)'한 것으로 돼 있다.
정월(正月)달에 낳은 아들이 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생각했는가를 `3'이란 수에 대한 한국인의 선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정월에 생남하려면 열달 전인 3 월에 합방길일(合房吉日)이 들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민족에 따라 좋아하는 길수(吉數)는 다르다. 기독교 문화권의 길수는 신이 천지 창조를 마치고 안식(安息)한 날 수인 `7'이다. 일본 사람은 `8' 수를 좋아한다. 한국 사람이 싫어하는 `4' 수를 유태인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좋아하고-. 희랍 사람들도 `3' 수를 좋아하나 한국 사람에게는 족탈불급이다. `3'은 천(天)-지(地)-인(人)하는 우주의 기본 구조요, 음(陰)-양(陽)-합(合)하는 헤겔의 변증법과도 통하는 천지창조의 수이기 때문이라 한다. 서양의 신이 6일 동안에 천지창조를 했다 하니 곱절이 빠른 3 일 동안에 창조를 해낸 한국의 신이 역시 손재간이 좋았던 것 같다.
차선적(次善的)으로 좋아하는 수가 6, 9, 12인 것은 그것이 3으로 나누어지는 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3 월 중에서도 홀수 날인 1, 3, 5, 7, 9 일과 짝수 날 중에서는 6, 12 일을 대길일(大吉日)로 여겼다. 눈치 코치없는 아둔한 여자를 두고 `삼짇(3 월 3 일)날 밤 마실 다니는 계집'이라고 빗댔던 것도 이 합방길일의 `은밀한 창조 작업'을 보장시켜 주기 위한 금기(禁忌)에서 생겨난 속담이다.
비단 아이를 낳는 데 뿐 아니라 거사(擧事)나 창업(創業), 그리고 과거(科擧)도 그 앞 날의 번창이나 영화를 비는 뜻에서 이 3 월 초순의 길일을 택했다.
3.1 운동을 굳이 그날에 잡은 것도 결코 그날이 고종인산(高宗因山) 날이라는 우연의 일치 때문만은 아니다. 거사를 의논하는 가운데 3 월 5 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도 미뤄 알 수가 있다. 민족 대표로서 33 인을 채운 것이며 옛날 과거에 33, 36 수로 급제시킨 것도 그렇다. 임금에게 올리는 하례(賀禮) 때 정승, 판서, 방백(方伯) 등 36 명으로 제한, 참여시킨 것이며 요즈음 친목 클럽이나 회사 이름에 가장 선호되는 숫자가 `삼오(三五)'인 것도 이 민족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일보(朝鮮日報)가 오늘 3 월 5 일로 창간 날짜를 잡은 것이나 창간 발기인 수를 36 명으로 한 것도 우연은 아니며, 따라서 63 주년이 되는 금년도 길년(吉年)이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