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588의 기적
청량리588의 기적…최일도씨 무료병원 추진 결실
「천사」는 멀리 있지 않았다. 우리들의 가까운 이웃, 「보통사람들」이 바로 「천사」들이었다.
세상사람들이 버리고 외면한 곳, 「서울 청량리 588」에 그 천사들이 밝은 햇빛처럼 찾아와 기적을 이뤄냈다.
『병들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치료도 못받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천사」를 찾습니다. 천사명(1천4명)이 1백만원씩 내 무료병원 「천사의 집」을 세웁시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쌍굴다리옆에 행려자 무의탁노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지어주는 「다일공동체」를 만든 崔一道목사(39)는 지난 93년 9월 허름한 사무실안에서 「천사기금」 모금을 제안했다. 『병원에서 치료라도 받아봤으면 여한이 없겠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더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긴급제안」이었다.
먼저 崔목사 등 7명이 발기인격으로 거둔 돈이 1천1백만원. 여기에 사무실 주변 속칭 588거리의 포주와 윤락여성들이 한푼두푼 모아 47만5천원을 보탰다. 포주와 윤락여성들이 「천사」의 일원으로 가담한 것이다.
그러나 崔목사의 「천사찾기」는 막막해 보였다. 무턱대고 시작한 일인데다가 1백만원을 선뜻 낼 수 있는 천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년이 걸리려나…」 「정말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2년 반만에 崔목사의 걱정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목표인 1천4명을 훌쩍 뛰어 넘어 26일 현재 1천1백47명의 「천사」들이 崔목사의 뜻에 동참했다. 모인 기금은 11억4천7백만원.
崔목사도 『이렇게 빨리 이뤄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라며
「천사기금」은 돈많은 사람들이 주는 거액은 거절하고 철저하게 1백만원 한도내에서 한푼두푼씩 분납으로 모은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1백만원씩의 성금을 낸 「천사」가 2년반만에 1천명을 훨씬 넘어선 것을 놓고 회원들은 「쌍굴다리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崔목사가 지난 8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무료급식소인 「오병이어(五餠二魚) 식당」문에는 그 기적을 일궈낸 「천사」들의 번호와 명단이 빽빽이 적혀 있다.
「0001 최일도」「0002 이공선」…「0007 김연수(崔목사 부인)」…. 명단은 「0840 강충근」에서 멈춰 있다. 천사들의 이름을 다 기록하기에는 문이 너무 비좁기 때문이다.
이름 중에는 「0303 金泳三대통령」이나 黃山城 전 환경부장관같은 유명인사들도 있지만 거의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다.
청량리역 앞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며 번 돈을 익명으로 내놓은 40대 남자, 죽은 딸 이름으로 회원이 된 고(故)박선영, 3년간 모은 손때 묻은 돈을 가져온 김부열 3형제….
588의 윤락여성 4명은 『우리들의 「검은 돈」도 받느냐』면서 4백만원을 내놓아 주변 사람들을 울렸다. 특히 스님을 비롯, 불교신자 20명과 가톨릭신자 50명이 『이런 일일수록 종파를 초월해야 한다』며 동참했다.
천사회원이 부쩍 늘어난 것은 東亞日報가 지난 1월 崔목사의 자전적 기록인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을 출판하면서부터. 두 달새에 4백명의 「천사」가 새로 회원으로 참여했다.
崔목사는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일단 식당 터 1백11평을 병원부지로 사들였다. 올여름에는 식당을 헐고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입니다. 병원 공사도 오병이어식당에서 밥을 먹는 행려자 부랑아들이 직접 해낼 겁니다』
崔목사는 「또하나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얼굴도 서로 모르는 1천1백여명의 천사회원들은 오는 5월6일 서울 기독교1백주년 기념관에서 모두 모인다. 이 자리에서 그동안 이름을 적지않고 비워둔 1004번째 회원으로 기록될 「천사」를 추첨으로 뽑는다.